2-12화 | Epilogue: 그래서 결론은, 돈도 못 벌면서 글만 쓰려는 내가 OO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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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안녕하세요. 네, 말도 안 되죠. 오늘이 <별게 다 불편해>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내드리는 날입니다. 3개월 동안 매주마다 최소 2천자, 길면 4천자 정도의 글을 한 편씩 썼어요. 글과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때로는 마지막에 첨부할 수다거리를 찾느라 글을 쓸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썼고요.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던 일이었어요. 그동안 저를 지켜봐주신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토록 성실한 저에 대한 자화자찬을 좀 더 길게 하고 싶긴 한데 그건 그냥 조용히 혼잣말로 처리할게요. 대신 마지막 에피소드인 만큼 일종의 셀프 인터뷰로 마무리해보았어요. 처음 시즌2를 기획할 때의 심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 자율후원제로 번 돈의 액수(처음에 구독자를 모집할 때 수입을 살짝 공개하겠다는 공약을 걸었으니 이렇게라도 떡밥을 회수해봅니다), 그리고 시즌3 계획까지. 부디 여러분들도 궁금했던 질문들이길 바라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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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일 년의 4분의 1을 갈아넣은 대장정이었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니까 좀 섬뜩하네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또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연재 기간 동안 변했거든요. 그래서 더 후다닥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나봐요.
오호,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죠?
음… 변화를 얘기하려면 일단 변화의 기준점이 되는, 구독자를 모집하고 연재를 막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해야겠어요. 솔직히 그때 일종의 자기부정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전처럼 프리랜서 앱에서 고객을 계속 모객하면서 첨삭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작년 말부터 뚜렷했어요. 근데 그럼 돈벌이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야하잖아요?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될대로 되겠지, 이러면서 고민을 미루고 있었어요.
다행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마침 올해 초부터는 결혼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빴고, 2월 말부터는 결혼 준비가 거의 제 풀타임 직업이 된 것처럼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가서 고민을 미룰 핑계도 충분했달까요. 나가는 돈도 정말 많았지만 그걸 메울 정도의 축의금도 계속 들어오니까 이전처럼 꼼꼼하게 가계부를 챙기던 습관도 느슨해졌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결혼 준비만 하신 건 아니잖아요. 결국 식을 치르고, 더 이상 준비할 행사가 없어진 시점에는 기분이 어땠나요?
기쁘면서도 내심 불안했어요. 일단 기뻤던 이유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결혼 준비는 살면서 한 번 밖에 겪지 않을 온갖 비일상의 연속이거든요. 수많은 업체들에 컨택하고, 양가 부모님들과 각종 일정과 의견을 조율하고, 대기하고, 놓친 건 없는지 복습하고, 연락하고…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 되었더니 ‘이제 더 준비할 게 없네?’ 싶은데 그게 너무 기뻐서 식이 진행되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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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짜 SNS에 필사적으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것만큼은 차마 참을 수가 없어서(그리고 이런 사진을 보고 저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결혼식 당일 가마에 탄 모습을 친구가 찍어줬는데 제가 저러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행복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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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미뤄두었던 고민을 다시 마주할 때가 된거죠. 더 이상 축의금 같은 불로소득이 통장에 마구 꽂힐 일도 없고(꽂혔던 그 돈도 고스란히 다 지출해서 남은 것도 없었고요), 여전히 프리랜서 앱은 쳐다보기도 싫고, 그 와중에 다음 책은 기약이 없고. 그래서 여기서 좀 비현실적인 욕심을 냈어요. ‘그래, 한 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어디까지 돈을 벌 수 있는지 보자.’ 돈을 버는 걸 아예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로 타협하기도 싫으니, 어차피 글을 써야한다면 그걸로 되는데까지만 돈을 벌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걸 넘어서는 건 그냥 포기하고요.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작년에 열심히 일할 때 저축해둔 돈도 있으니 아예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모종의 자신감도 있었어요.
글로 돈을 번다… 어느 작가든 한 번쯤 꿔보는 꿈이지만 참 만만한 일이 아니잖아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어도 쉽지 않았을텐데, 이상하게도 <별게 다 불편해> 시즌2를 이전 시즌들처럼 유료 구독제로 운영하지는 않았어요. 수입에 신경을 쓰는 상황에서도 왜 그랬나요?
당장의 수입을 포기하더라도 연옥이라는 작가에 대한 노출을 늘리고 싶었어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까지 내고 내 글을 읽어보라고 했던 베타 시즌과 시즌 1에서는 구독자분들이 열 분 남짓이었고, 모두 저의 지인들이었거든요. 물론 그분들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지만 ‘내가 왜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려고 하지?’ 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아니었어요. 일단 단순한 취미는 아니었고요. 분명 메일링 서비스가 돈을 버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그걸 좇는게 많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많은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콘텐츠를 무료로 풀어서 나의 글을 좋아하는 팬베이스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수입이 쪼달리는 상황에서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구독 신청서를 만들면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어요. 지금이라도 유료로 바꿔야하지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닌가… 이것도 어떻게 보면 노동인데, 아무리 그 액수가 작더라도 대가 없는 노동은 심적으로 스트레스가 되어서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그래도 대원칙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자율후원제’로 운영하자는 타협을 했어요. 구독자별로 나를 알게 된 경로나 지불 의사가 모두 다를테니 각자 원하는대로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자.
근데, 그러면서도 아무도 돈을 보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약간 다 내려놓은 마음으로 구독 신청서를 오픈했는데 놀랍게도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구독료가 20만 원 남짓 모였는데 누군가에게는 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 있어선 결코 적지 않았을 뿐더러 메일링 서비스로 가능한 액수일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거든요. 또 마음 편하게, 부담 없이 구독 신청해주신 분들에게도 문을 열어놓아서 그런가 구독자 수도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고요. 시즌1 구독자가 12명이었는데 시즌2는 이 메일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 91명이에요. 수입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 노출도 늘리고 싶다면 자율후원제,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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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8배에 가까운 성장이라니.. 감사합니다. 따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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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축하드려요. 근데 그 구독료가 매달 갱신되는 게 아니라 처음 구독할 때만 지불하는 일회성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 뒤로는 수입을 어떻게 확보하셨나요?
맞아요. 설령 갱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달을 20만원에만 의존해서 사는 건 불가능했죠. 이외에도 창작자를 위한 버추얼 오피스 <연옥피스>를 운영하고, 오프라인 반기 회고 모임인 <괜찮아, 아직 반이나 남았어>를 기획해서 부수입을 만들었어요. 후자는 사실 저까지 딱 네 명이서 모여서 한 번 진행한 행사라 처음부터 수입을 확보할 목적으로 한 건 아니었고요. 전자는 물론 수입을 충당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거기에 앞서서 내 자신과 창작자 동료들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기획, 실험한다는 의미가 더 컸어요. 모임을 즐겁게 운영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선물과 경품에 지출한 비용까지 생각하면 거의 남는 게 없었죠. 이것도 메일링 서비스를 유료 구독제 대신 자율후원제로 선택한 것처럼, 단기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멀리 보고 투자하는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그것도 정말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수입에 대한 미스터리가 도저히 풀리지 않네요… 그럼 정말로, 사실상 고정 수입 없이, 시즌2의 부제 말마따나 ‘돈도 못 벌면서 글만 쓰는’ 생활을 한 게 맞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5월과 6월에는 적자였어요. 위에서 언급한 수입원은 적자가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살짝 틀어막는 수준이었고요. 그 어떤 활동도 수입 자체만이 목적인 건 없었어요. 그러니 사실상 안정적인 경제활동 없이 두 달을 생활했다고 보시면 돼요.
2-8화에서 다루신 것처럼 수입 없는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고, 끝내 알바몬에 가입하는 걸로 무수입 생활 실험을 마치셨죠. 심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 실험을 강행한 걸 후회하지는 않나요?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교훈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저는 비상금이 있으니 두 달 정도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근데 이 ‘비상금’이라는 게 정말 최악의 상황에만 손을 대는 용도로 남겨둔 돈이었어요. 즉,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으로는 쓸 수 없는 돈이었죠. 그냥 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거기까지 침범하기 시작하면 정말 저의 재정 상태에 적신호가 켜진거나 다름 없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게 두 달 동안의 생활을 지탱해줄 수는 없었고, 아주 약간의 심적인 위안을 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수입 없이 생활하려면 ‘내가 마음대로 손을 대도 되는 n개월치 생활비를 모아두고, 그 돈을 쓰는 거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야하는구나’라는 걸 그제서야 배운 거예요. 직접 경험한 덕분에 얻은 깨달음이죠.
그리고 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아무리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봤자 오직 그걸로만 생활비를 완벽히 충당하려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니 그건 어떤 의미에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없었어요. 설령 반짝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하거나 반복, 확장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 그걸로만 계속 먹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하지 아닐까? 물론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일로’만’ 먹고 살겠다는 목표가 이제 막 도전을 시작한 저에게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부터 문제였죠. 목표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우니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요.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일로 바로 바로 돈을 버는 데에만 몰두하다보면, 나의 일을 성장시키는 ‘투자’를 감행할 여유가 없어져요. 예를 들어 더 많은 참가자들을 모으기 위해 광고비를 지출하거나, 노하우를 얻기 위해 교육을 듣거나 책을 구입하거나, 모임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벤트를 여는 것 등… 거기에 몇 만 원 지출하는게 아까워서 돈을 너무 꽁꽁 싸매고 있으면 <별게 다 불편해> 초반 시즌이 그러했듯 양적이든 질적이든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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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익한 교훈을 많이 얻으셨네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벌써 5천 자가 넘어가서 이만 마무리해야할 것 같아요. 우리 구독자 여러분께 간단히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투머치토커가 셀프 인터뷰를 하면 이렇게 길어진다는 걸 배워갑니다. 예, 일단 다시 한 번 구독해주신 91명의 구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쓰기가 늘 외로웠던 저에게 누군가가 기다리는 작품을 만드는 경험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었어요. 책으로 엮어달라고 말씀해주신 감사한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 생각을 해보긴 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신간을 발표할 계획을 포함해서 신청했던 북페어에서 광탈하고 책을 만들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싶어서 조용히 마음을 접었습니다. 깔깔.
이건 아주 약간 농담이고요(약간의 진심도 섞여있음). 사실 별다른 기획 없이 매번 손에 잡히는대로 다른 주제를 골랐던터라 책이 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을 ‘제로페이퍼’라고 지은 사람으로서, 정말 물성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콘텐츠가 아니라면 굳이 종이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철학도 있고… 그래서 종이책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아요. 언젠가 만든다면 몇 개의 시즌을 더 운영한 뒤에, 일정한 테마를 중심으로 편집하고 엮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양의 원고가 쌓이면 그때 다시 고민해볼게요.
시즌3은 원래는 늦어도 9월에는 시작할까 했는데 그것보다 더 오래 쉬어갈 가능성도 적지는 않아요. 하반기에는 차기작 준비에 좀 더 박차를 가하고 싶은데, 그걸 위해 쓰는 글에 더해 메일링 서비스 원고까지 일주일에 n편씩 뽑아내다보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아웃풋이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메일링 서비스는 잠시 쉬면서, 거기에 썼던 시간과 에너지를 차기작 준비에 필요한 인풋을 쌓는 데에 쓸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재개한다면 지금보다는 콘텐츠의 양이 좀 더 가벼워지거나 기획 자체가 아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미정이다, 라는 말을 길게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돈도 못 벌면서 글만 쓰려는 내가... 좀 멋졌다! 장했다! 좋아하는 일로만 먹고 살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걸 알게 된 내가 멋지다! 이제 알바 열심히 하자!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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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지금까지 보내드린 메일은 아카이브 페이지에서 언제든 다시 읽으실 수 있어요. (제 인스타그램 프로필 링크에도 업데이트 해둘게요.) 이메일 답장과 패들릿, 후원금으로 보내주신 소중한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시즌3에서 또 뵐 수 있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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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메일이 마음에 드셨나요?
여러분의 소감과 응원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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