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니, 이렇게도 돈을 번다고?’ 기대 없이 덥석 받아본 돈
대학생 시절에 난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쳤었다. 꽹과리 연주자는 맨 앞에서 다른 연주자들을 이끄는 지휘자이자 무대의 대장인데, 덕분에 야외에서 공연을 할 때 열성적인 팬(?)들로부터 쏟아지는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그 관심에는 금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여름에 농활을 가면 악기를 치며 집집마다 복을 빌어주는 ‘지신밟기’라는 행사를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온 동네 어르신들이 뛰쳐나와서 광란의 춤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몸빼바지 자락을 현란하게 펄럭거리며 우렁차게 추임새를 넣는 관객과 하나되다보면 싸이의 흠뻑쇼가 부럽지 않았다. 그러다가 꼭 몇 분이 춤을 추며 슬렁슬렁 다가오다가 머리에 쓴 상모 벙거지에 무언가 콱 쑤셔넣는다. “이렇게 재롱을 떠는데 용돈을 줘야지!”
예의 바른 한국인은 두 번쯤 거절을 해야겠지만 난 악기를 치느라 손을 쓸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깊은 목례와 함께 넙죽 받았다. 거절하지 않은 건 정말 그 이유 뿐이다.
그렇게 해가 떨어질 때까지 돈을 잔뜩 먹은 주크박스처럼 미친듯이 곡을 뽑아내다가 숙소로 돌아오면, 몸은 피곤해도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이참에 꽹과리 채를 더 고급 모델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악기를 집어던지고 땀에 쩔은 벙거지와 흑포를 벗어 정리하는데... 어?
아침에 썼을때와 마찬가지로 휑한 챙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 혹시 아까 마당에서 연주할 때 바닥에 떨어진 돈 못봤어?”
허둥대는 나의 질문에 옆에 널부러져 있던 후배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건 제가 챙겼습니다만. 공금이니까요.”
와, 그때만큼 총무가 얄미운 적이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 툴툴거릴지언정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광화문인가, 인사동인가에서 공연 알바를 뛰었을 때에도 한 아저씨가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며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준 적이 있었다. 이 역시 당연히 공금으로 돌아가 푸짐한 회식비가 되어주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지금이라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근데 2019년에도 OB들을 모아서 야외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딱 봐도 학생 얼굴이 아니니까 덜 기특해서 그랬나. 아니면 그새 경제가 많이 어려워져서 그런 걸까.
그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다며 용돈을 주겠다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던 시절이 그립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용돈을 줘야하는 나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