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월 두 달 동안 고정 수입 없이 살아보는 일-실험을 감행했다.
‘감행’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굉장히 불안정하고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는다든가 굶는다든가 하는, 그런 극단적으로 궁핍한 상황까지는 예상되지 않았지만(그러지 않을 걸 계산하고 실험한 거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과 무기력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집은커녕 침대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름 산전수전 겪어본 나에게도 비상 상황이었다.
아직도 이 불안의 근원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생각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궁핍의 역치가 생각보다 낮다는 걸 배웠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럭저럭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했다. 왜냐면 숨만 쉬어도 나가는, 그리고 노력으로 줄일 수 없는 고정 비용이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으니까. 각종 공과금, 보험료, 대출 원금과 이자… (이럴 때만큼은 사대보험을 보장해 주는 직장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정확히 언제, 얼마큼이나 출금될지도 알고 통장 잔고도 아는 상황에서 그걸 그냥 손 놓고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그런 괴로움 덕분에 따뜻함과 친절을 베풀 수 있을 정도의 심적 여유를 주는 예산의 규모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일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했다. 이전에는 이게 단순히 ‘돈을 버는 능력만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왜곡된 생각’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 같다. 두 달 동안 내 존재가 매우 무가치하다거나, 게을러서 미래를 그르치고 있다거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 한 적은 없다. (이전에는 일을 쉴 때 그런 생각이 간간히 들었었는데 약간은 발전을 한 걸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활기가 줄고 잡생각이 느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날 기다리는 일이 있지만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휴식’과 ‘날 기다리는 일이 없어서 공백처럼 느껴지는 휴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후자로 인해 하루가 괴로울 정도로 길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점점 책상을 떠나 침대로, 이불속으로 도망을 갔다.
물론 백수도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듯 나 역시 할 일이 적지 않았다. 차기작을 위한 글도 쓰고, 팟캐스트 대본도 적고, 버추얼 오피스 <연옥피스>를 운영하고 내부 행사를 기획했다. 하지만 차기작 원고는 겨우 걸음마 단계라 책으로 엮는 뿌듯함을 맛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팟캐스트 준비는 늘 즐겁지만 아직까지는 동료와 함께하는 즐거운 취미, 내지는 먼 훗 날 나의 커리어에 싹을 틔울 씨를 뿌리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즉각적 경제적, 심적 보상을 주는 프로젝트는 사실상 <연옥피스>가 전부였는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수입원 치고는 수익이 너무도 작고 귀여웠다. 투자 없는 성장의 한계도 명확히 느껴졌다.
다음에 이런 실험을 다시 한다면 공백기를 지탱할 수 있는 목돈을 마련해 놓고 시작할 것이다. 글을 적다가 생각났는데 실제로 그래본 적이 있었다. 한참 첨삭 일을 했을 때, 성수기에 너무 무리해서 번아웃이 찾아오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 쉬어야 했다. 물론 그때는 명확하게 창작이나 프로젝트 기획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비운 건 아니었지만, 쉼의 목적을 떠나서 지난 두 달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푹 쉬었다. 그 이유는 성수기 때 월 매출을 초과 달성한 덕분에 비수기 때 일을 완전히 쉬어도 경제적으로 지장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얼마나 오래 쉴 수 있는지도, 무리해서 절약하지 않아도 고정비와 변동비 모두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가계부를 쓰면 마법처럼 지출이 줄거나 소득이 늘어나진 않지만, 최소한 언제 어디로 돈이 새는지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푹 쉬고 다시 일에 복귀…한 뒤에도 여전히 잘 풀리지 않아서 그 해에 갑자기 독립출판으로 샜다가 그 뒤로는 단 한 차례도 호시절 수준의 수입을 누리는 일이 없었다. 문제는 회고를 제대로 안 하는 바람에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버린 것이다. 시행착오 없이 제대로 성공해 놓고 성공한 이유를 까먹어서 다시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이 있다? 그게 저네요. 갑자기 좀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라도 알아서 이렇게 구독자 여러분께 글로 적어 공표까지 했으니 다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목돈을 모아놓고 덤비자’.
그럼 그런 목돈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는 묻지 말아 주길 바란다. 슬프니까. 지금은 그런 목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목돈 없이 감행했다가 재정에 큰 구멍을 낸 두 달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덩달아 오래도록 맛보지 못했던 성취감도 얻고, 고립되었다는 감각을 잊게 해 줄 적당한 사회생활도 시도하고 싶어졌다.
그렇다. 이건 사실 내가 7월부터 알바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한 굉장한 빌드업이었다. 그것도 오전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일 8시간 동안 사무실에 갇혀 일하는, 사무직 업무다. 심지어 주말에 일하는 날도 간간히 있는데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퇴사 직후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날 노트북 앞에 앉히고 프리랜서 앱에 가입하게 만든 절박함이 날 도울 거라 믿는다. 길어봤자 한두 달짜리 단기 계약직이니까, 진짜 안될 것 같으면 언제든 중간에 도망쳐도 괜찮으니까,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쓰고 주휴수당까지 챙겨주는 일자리가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아마도 도망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뭐 이런 생각으로 도전하려 한다.
사실 ‘도전’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겸손하지 못한 것 같다. 꽤나 여러 군데에 서류를 내고 면접을 봐서 합격한 알바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뼈와 살을 깎고, 하고 싶은 말 전부 참아가면서 굴욕적으로는 일하지 말아야지. 1인 사업가의 기쁨과 슬픔을 흠뻑 맛본 다음 잠시나마 조직으로 돌아가는 이 경험은,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덜컥 회사를 다니던 시절과 다를 거라고 믿는다.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부당한 대우 앞에서는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조직 밖에서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 돈을 벌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불필요하게 숙이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다짐이 다 허무하게 흩어질 정도로 현실이 매섭더라도 그것마저 글로 기록하며 계속 살아야지 뭐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