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쌀쌀해지는 늦은 가을에 입양한 야자수
그러니까 그 야자수는 이미 입양할 때부터 불운한 운명이었다. 세상 누가 추워지는 날씨에 야자수를 고르겠는가. 아, 진짜로 살아있는 야자수는 아니니까 내가 식물을 죽일 생각으로 입양했다는 오해는 금물이다. 그건 사실 고양이들이 심심할 때마다 벅벅 긁을 수 있는, 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기다란 기둥에 성긴 삼줄을 감아서 만든 스크래처였다. 기둥 끝에 펠트 재질의 이파리 몇 개와 고양이들이 튕기며 놀 수 있는 열매 모양 공을 달아 야자수 흉내를 낸 것이 귀엽기도 하고 선선한 날씨에도 선택받기 위해 애쓰는 모양이 안타까워 그만 훌렁 사버렸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우리 집에 기거하는 네 마리의 고양이 중 단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잔인하게도 스크래처를 방치했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난 25%의 확률조차 뚫지 못한 좌절을 느끼며 가짜 이파리에 진짜 먼지가 소복소복 쌓여가는 걸 구경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들이 격하게 뛰어놀던 나머지 거실 천장까지 닿는 캣타워를 쓰러뜨려 야자수가 그 아래에 깔려버렸다. 안 그래도 스크래처 바닥 판과 기둥 사이의 연결 부위가 헐거웠는데 이 사고 덕분에 댕-강 부러졌다.
스크래처로 태어났지만 고양이 발톱과 스치지도 못한 채 은퇴해 버린 야자수의 운명이 가여웠다. 그래서 원래 세워져 있던 곳 근처의 벽에 기대어 세워놓는 방식으로 나름의 추모를 하게 되었다. (라는 핑계로 그냥 버리지 않았을 뿐이다. 스크래처를 분리배출하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02. 구조되자마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고양이
해가 지나고 야자수가 퍽 어울리는 덥고 습한 날씨가 돌아왔다. 지난 세 달 동안 합쳐서 다섯 번도 가지 않았던 헬스장 회원권을 연장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런 더운 날씨에 샤워장으로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돈을 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치 병아리가 있는 힘껏 빽빽대는 듯한 소리. 그건 분명 어린 고양이의 절박한 울음소리였다. 나와 함께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포기한 주민들이 다 돌아간 뒤에서야, 난 길가에 세워진 봉고차 타이어 위에 몸을 말고 우는 작은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작았지만 그가 끼어있는 공간은 고양이보다도 작았다. 타이어와 차체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손을 넣어 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꺼내는 데에 체감상 오 분 넘게 걸린 듯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 밖으로 고양이를 꺼낸 순간, 그는 온갖 짜증을 내며 실처럼 얇은 발톱으로 내 손을 할퀴더니 순식간에 차 옆의 담벼락 뒤로 뛰어넘어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가 사라진 담벼락이 좀 이상하게 생겼다는 생각으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그 담이 사실 담이 아니라 앞뒤가 막혀 있고, 지붕이 덮여서 시야가 차단되고, 좁고, 길고, 아무튼 고양이가 갇히기 딱 좋은 공간이라는 걸.
고양이가 사라진 그 구멍 안을 애타게 들여다봤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가 자력으로 뛰어나오기엔 나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공간의 깊이가 깊어도 너무 깊었다.
젠장. 죽을 뻔한 고양이를 살리자마자 다시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격이었다.
짤막한 순간 동안 내 손바닥 위에서 뜨겁게 숨 쉬던 털북숭이를 생각하며, 뭐라도 하지 않았다가는 지옥에 갈 것 같다는 생각에 집으로 내달리며 질질 울었다.
03. 보릿고개 같았던, 예측 가능한 수입이 하나도 없었던 지난 두 달
헐떡이며 끝끝내 버티다가 결국 지난주부터 몇 개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다. 집에서 제일 가까웠던 곳은 근로계약서와 세금 신고를 거부했고, 가장 친절했던 곳은 면접장에 가서야 채용 공고에 없던 주 7일 근무를 요구했고, 사대보험을 약속했던 곳은 피가 차갑게 식을 정도로 삭막했다.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딸깍, 딸깍, 딸깍, 마우스 버튼을 누르며 화면 속 사진과 단어를 연결하고 있었다. 적막 속에서 8시간 동안 그걸 반복하다가 할당량을 못 채우면 야근은 필수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딸깍, 딸깍, 딸깍. 클릭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면접관의 속삭이는 목소리조차 소음처럼 느껴졌다. 웅얼거리듯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일터가 그런 곳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실패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무거운 몸을 뉘이고 며칠 동안 망상의 세계로 도피했다. 제발, 입사 취소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길.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되길. 알고 보니 내가 평민 체험 중이던 공주님이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긴 했다.
04.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그걸 감히 예측하려 들은 미물의 최후
이 정도의 우연은 신의 장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건 어느 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 메일함에 도착했다. 누군가 나에게 돈을 주고 번역 작업을 맡기고 싶어 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 동호회에서 교류했던 한 회원분께서 나에게 재택근무 알바 기회를 알려주었다. 누구에게도 구인구직 소식을 부탁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알바 면접을 보고 돌아와 지나가듯 푸념한 걸 기억했다가 연락을 주신 거였다.
3주 전의 나는 내가 하루에 세 시간씩 설거지를 하고 있을 줄 알았고, 2주 전에는 면접장에서 목놓아 나의 엑셀 실력을 어필하고 있었고, 1주 전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었다. 작년 가을에 가짜 야자수를 사들고 룰루랄라 집에 돌아올 때엔 고양이들이 눈길도 안 줄줄 꿈에도 몰랐다. 그날 헬스장 등록을 포기했다면 문제의 길고양이를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무엇도 내가 제어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해가 뜨고 비가 내리듯 나에게 닥쳐왔다.
이렇게 적으면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린 살면서 많은 것들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 글을 맺는 순간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뇌가 터져 의식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까지 많은 사람들은 내일 점심을 뭐 먹을지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실 그건 그 누구도 약속할 수 없는데.
내가 구조한 길고양이도 차체에 끼어있다가 그다음엔 담벼락과 건물 벽 사이에 갇힐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이 외면했던 야자수 스크래처가 마침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이고, 그걸 고양이가 들어간 구멍 안에 넣어주었더니 타고 올라와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며칠 뒤에 그곳을 다시 방문하자 구멍 옆에는 각종 사료와 간식이 담긴 3첩 반상과 물통과 누군가 붙여둔 메모가 있었다. ‘고양이는 갇혀있지 않아요. 자유롭게 출입 가능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려자 R이 근처를 지나다가 고양이가 구멍 앞에 앉아있는 걸 봤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고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방이 막혀 죽음의 구렁텅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이제 안전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비록 한 치 앞도 못 보는 미물이지만 당분간은 기분 좋게 미래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